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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매향, 칼을 찬 유학자 남명의 선비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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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년의시간
댓글 0건 조회 9회 작성일 21-07-30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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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이 매향을 찾아 떠나던 심매(尋梅) 또는 탐매(探梅)기행은 시묵객들의 아름다운 풍류였다. 오늘날엔 이 멋스러운 여정은 없으나 여전히 매향을 찾아 지리산 자락의 산청을 찾는다. 이곳에는 오래된 매화나무 세그루가 있어 찾는 이들의 마음과 정신을 옛 풍류기행 처럼 흉내는 낼 수있게 그 자리를 5~6백년 지키고 있다.  그곳에 살던 선비들이 심은 것인데 세그루가 있다고 한다. 이것은 매실을 얻기위한 나무가 아니라 매화를 심은 이의 뜻과 오랜 역사를 품고 있으므로 그 맑고 고결한 정신을 흠모하는 여정 일 것이다.


그 향기가 천리까지 간다는 향문천리(香問天里)로 여전히 가는 길손을 붙잡고 있다. 매화를 이르러 옥골빙혼(玉骨氷魂)이라 함은 '그 자태가 깨끗한 모습이요, 얼음처럼 차고 맑은 넋'을 일컬으니, 진정한 선비정신을 기리고 배우는 일에 다름 아니다. 3梅중 가장  오래된 매화는 단성면 남사 예담촌 하씨 고가의 매화나무이다. 매화를 심은 이는 이 마을 입향조로 알려진 고려말의 하즙(河楫, 1303~1380)이다.  그가 직접 심은 것으로서 진양 하씨 집안 내력과 함께 전해오는 그의 영매시(詠梅詩)의 표석이 마당에 세워져 있다.


"집 양지에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찬겨울 꽃망울 나를위해 피었네 /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 한 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어라" /  이 시를 읽으면서 그 옛날 선비들의 한 점 오욕도 없는 고결한 마음씨를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이 매화나무는 650여년에 이르는 나무로 국내 최고의 매화인데, 연다홍및 겹매로 오늘에 전한다. 


인근지역 운리(雲里)의  단속사지(斷俗寺地) 뒤뜰에 심겨 있다.  하즙의 외손자로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강회백(姜淮伯,1357~1402)이 심은 것이다.  그의 손자 강희안(1419~1463)이 지은 국내 최초의 식물재배및 품평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증언하고 있다.  이 나무는 온갖 수난을 겪은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옛날 <양화소록>의 저자인 강희안의 매화시가 오늘도 여전히 새록새록 하다.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정화시킨다.   " 내가 매화냐 매화가 나냐 / 보기만 하여도 마음이 맑아 / 티끌하나 날지 않는 이슥한 밤 / 창가에 달이 흐른다./  시 에서 티끌이라 했는데 요즘으로 치면 미세먼지 정도 되나? 이것은 과학이 발전하면 편리는 주지만 정신을 맑게 하는데는 좀 먹는 일이니 그리도 정신들이 썩어 제 앞에 제물만 보이는가 보다.


이제 마지막 매화가 있는곳은 시천면 덕산의 산천재(山川齋) 매화인 남명정한의 매화다.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선생이 직접 심은 것으로 알려지며 400년이 넘은 고매(古梅)다.  남명은 16세기 중엽 퇴계와 더불어 영남을 좌우로 가른 인걸이지만 그동안 잊혀 있었다.  그 까닭을 사람들은 인조반정을 계기로 북인이 몰락했던 정치적인 요인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학문론'자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할 수 있겠다.


남명은 조선의 진정한 선비의 표상으로 널리 추앙하는바, 그의 사상과 삶은 여전히 오늘날까지 유유하게 전하여 오고 있다. 그의 나이 61살때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고 덕천강이 흐르는 덕산에 산천재를 짓고 심은 매화이다.  세속의 명리를 두고 오로지 학문과 도덕, 인격단성을 통해 자신은 물론 후학양성을 위해 머문 곳에 심은 매화인 것이다.  그는 생전에 '敬'과 '義'로서 생애를 다 했으며 사후에 處士로 남은 진정한 선비였다.  즉 시국의 상황을 통찰하고 정의와 합리에 기초한 학문과 실행을 강조 함으로써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 이라 불리던 곽재우등 많은 문화생들이 애국의 길을 걷게한 선구자 였다.


권력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천성을 따라 백성을 섬기는 '진리의 사도'로서 은둔과 자족의 안일한 태도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산 것이다. 그 눈 푸르고 드맑은 기상을 지닌 선비가 심은 매화는 오늘도 육골빙혼의 화현(化現)으로 길손들을 부른다. 반가이 맞아주며 눈꽃처럼 피어있다. 누구든지 이 매화를 우러러보며 산천재에 걸린 주련의 뜻을 헤아리면 숙연해진다. 


봄산 어느 곳엔들 향그런 풀 없으리오마는 / 다만 천황봉 하늘나라에 가까운걸 사랑해서라네 / 맨손 으로 들어와서 무얼 먹고 살건가?/ 은하수 같이 맑은 물 십리니 먹고도 남겠네/   남명 조식!  그는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누구보다 찰저했던 사람이다. 그가 잊혀진 것은 바로 그의 학문성격 그 자체에 연유한다.  그는 흡사 구름속에 가린 산봉우리처럼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할 말은 다하고 살았는데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남명을 펼치면 곧바로 닥쳐오는 것이 바로 <칼>의 이미지다.


항상 칼을 차고 다녔다. 자신의 칼에다 내명자경(內明者敬), 외단자의(外斷者義) 라는 글을 새겨 두었다.  "자신의 내적 본질에 대한 주시와 자각을 말한다. 지속적 파지 위해서 분명해진 사물의 시비선악에 따라 행동을 <단호히> 결단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에게준 칼의 자루에 새긴 오언절구 시를 보자.  "불속에서 하얀 칼을 뽑아내니 / 서리같은 빛 달에까지 닿아 흐르네 / 견우 북두 떠 있는 넓디 넓은 하늘에 / 정신은 놀되 칼날은 놀지 않는다."  <<국역 남명집>>p33.


칼날과 서릿발, 하얗고서늘한 빛, 마음에 한 점 티끌도 용납할 수 없고, 판단에 한 순간도 주저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다.  남명이 50세 되던해 지우들과 멱을 감으며 읊은 시가 있다. " 사십년 동안 더럽혀져 온 몸 / 천 섬 되는 맑은 물에 싹 씻어 버린다 / 만약 티끌이 오장에서 생긴다면 / 지금 당장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부쳐 보내리라."/   문(文)을 숭상하는 유학자의 시로는 안 보인다. <신명사도,(神明舍圖)>  남명의<칼날같은 수양론> 을 간명하게 담고 있는 그의 핵심 저작이다.


남명에게 매화, 칼등은 남명의 학문방향,후학들의 가르침,실천적인 행동의 지표다.  요즈음과 같이 도덕성과 윤리성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시대에는 남명과 같은 이가 있어 추상같은 가르침이 있어야한다. 하지만 그런 이는 보이지 않고 돈에 눈이 멀어 자존심과 양심은 저 멀리 가 있으니 사회가 온통 혼란스러울 뿐이다. 옛 성인의 가르침은 엿 바꿔 먹고 돼도 않는 외국 문물에만 빠져 있으니 정신이 타락 하는 것이다.(외국 문물이 다 나쁘다는 표현은 아니다) 


특히 잘 난체하는 지도층 인사들 남명 조식 선생 저작 읽기를 권한다.  나라를 위한다고 말로만 떠들지 말고 실천적인 행동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임진란때 의병장출신 중에 유독 남명의 제자들이 많았다는 것은 남명의 가르침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가 있는 대목이다. 나라를 위하는 길은 말이 아닌 행동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정신이 맑고 살아 있으면 그 나라는 반딧불이 도심에도 나타날 것이다. 나쁜짓을 한다면 하늘에서 벼락이 갑자기 내리 칠 것이다.  한 여름밤 꿈이 아니길 바라며.....내 꿈이.


읽을만한 책


<<남명 조식>>박병련외3인,2002,청계

<<대동법>>이정철,2011,역사비평사.

<<남명 조식>>예문동양사상연구원,2002,예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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