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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 이야기

어느 혁명가의 길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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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년의시간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1-07-3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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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2013년에 사망했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8주년이 되는 것같다.  그는 이제 에밀리아노 사파타, 체 게바라, 살바도르 아옌데등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가슴에 살아있는 위대한 신념의 수호자들 사이에서 자리하게 되었다.  차베스는 지독히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야노스라고 불리는 대평원의 작은마을 사바네타가 그의 고향이다.


1954년 그가 태어났을때 스무살도 채 되지않은 그의 부모는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임시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형 아단과 우고는 할머니에게 맡길수 밖에 없었다. 우고는 15살때 까지  할머니 로사 이네스의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영리했으며 자애로운 사람이었으며 어린 우고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할머니는 과자를 만들어 시장에 팔아 버는 돈이 수입의 전부였다. 우고는 어릴때부터 밭일과 선조 대대로 내려온 농사법을 할머니에게서 배웠다.  우고는 7살부터는 만든 과자를 들고 나가 사바네타의 거리에서, 시장에서 팔았다.


"마을에는 훍바닥으로 된 길이 4개 있었는데 장마철에는 지옥으로 변한다." 차베스는 고향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회적계급에 따라 '부자들'은 마을 아래쪽 돌로 만든 저택에서 살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산 중턱의 초가집에서 살았다.  인종에 따른 구분도 있었다.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등 유럽 이민자의 후손은 상업과 목재산업에 종사했고 혼혈인들은 주로 노동을 했다.


베네수엘라 '소년'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을 평생 잊지 못했다.  가죽구두대신 대마로 짠 짚신을 신고 왔다해서 다시 집으로 보내졌던 것이다. 집에서 할머니에게 읽기와 쓰기를 배워 나중에는 우수한 학생이 되었다. 할머니는 어린 우고에게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해 주었다. 어린 우고는 남미 '독립의 아버지'인 엘리베르 타도르(해방자) 볼리바르와 '연방전쟁'의 영웅이며 가난한 농민을 위해 급진적인 농지개혁을 실시했던, 그리고 자유로운 땅, 자유로운 사람 이라는 구호를 외쳤던 사모라를 숭배하며 자랐다. 


기계적인 사회결정론 이란 없다.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차베스는 완전히 다른 운명을 살수도 있었지만 할머니는 차베스가 아주 어릴때부터 강한 계급의식을 심어 주었다.  우고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바리나스로 갔다.  때는 1966년, 베트남전쟁이 연일 신문의 1면을 장식하고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의 밀림에서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1958년 부터 민주주의가 회복됐지만 게릴라 활동은 여전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차베스의 성격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완성됐다. 자신감이 넘치고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어디서나 거침이 없었다. 그는 공부도 잘하고,운동도 잘해 이른바 '타고난 지도자'같은 사람이 되었다. 드디어 1971년 사관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해 청년 차베스는 대평원의 시골마을을 떠나 수도 카라카스에 입성하게 된다. 차베스는 곧바로 군사교육에 매료됐다. 그리고 군당국은 '확실하지 않거나' '급진적이라고' 생각되는 장교들을 사관학교의 교수로 대거 보내 버렸다. 자신들의 휘하에 두기는 꺼리면서도 미래의 장교들을 교육하는 임무는 기꺼이 맡겼던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1958년 독재자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가 축출된 이후 민주행동당(사회민주주의 계열)과 코페이당(기독민주주의 계열)이 푼토피아 협약에 따라 교대로 정권을 잡고 있었다.  부정부패가 만연됐다. 극좌파 조직과 연결된 장교들이 이미 1962년에 푸에르토 카멜라와 카루파노에서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다.  게릴라에 합류하기 위해 수많은 군인들이 산으로 들어갔다. 약식처형,고문,실종......탄압은 무자비했다.


미국의 존재는 노골적 이었다. 미 대표부 직원들은 석유개발 지역뿐만 아니라 심지어 군사령부에도 주재했다.  미중앙정보국(CIA) 도 많은 수의 요원을 베네수엘라에 파견했고 반란군을 진압하는데도 일조했다.  차베스는 사관학교에서 배운 이론교육을 온 몸으로 흡수했는데, 에세키넬 사모라의 전문가인 페레스 아르카이스 장군에게서 볼리바르주의를 배웠다. 볼리바르에 관한 책을 닥치는대로 읽었고 모두 암기했다.  전투에서 사용된 모든 전략을 지도에  자세하게 재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볼리바르에 정통한 시몬 로드리게스의 저작도 읽었다. 여기서 로드리게스, 볼리바르, 자모라는 차베스의 '3개 사상적 뿌리' 이론이 만들어진다.  이 3명이 쓴 정치 저작물에서 독립,주권, 사회정의, 포용, 평등, 라틴아메리카 통합의 개념을 배웠다. 이 개념은 차후 차베스가 펼치는 정치 사회 정책의 뼈대가 된다.  차베스는 머리가 좋았고 특히 과학에 강했다.  기억력리더였다.도 놀라웠다. 최우수생도 였고 리더였다. 


카를 마르크스 , 레닌, 안토니오 그람시, 프란츠 파농, 체 게바라등에 관한 책을 몰래  읽었고 사관학교 밖의 공산당(PCV), 급진노동당(La causeR), 좌파혁명운동(MIR), 사회주의운동(MAS)등 다양한 극좌파 정치 써클에 참여하였다. 비밀리에 조직의 지도자들도 만났다. 이때도 모두 차베스를 자신의 조직으로 끌어 들이려고 했다. 군대에 좌파세력을 침투 시키는 것은 좌파의 오래된 야심이기도 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났던 군사봉기를 연구하면서 차베스는 정권을 잡으면 만성적인 빈곤을 뿌리 뽑을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파 군사독재 정권을 막기위해서는 군대와 좌파 정치조직이 연대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바로 차베스가 주창한 '민군동맹'의 중심 개념이다. 


차베스는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군사정권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연구했는데 특히 과테말라의 야코보 아르벤스, 볼리비아의 후안 호세 토레스, 파나마의 오마르 토리호스, 페루의 후안 벨라스코 알바라도 정권에 관심을 가졌다. 차베스가 1974년에 사관생도 자격으로 페루의 수도 리마를 방문해 알바라도 장군을 접견했는데 그때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25년후 정권을 잡은뒤1999년 투표로 새로 제정된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 헌법'을 알바라도의 유명한 '파란 소책자' 같은 형식으로 제작하기도 한다. 


특히 정치적 배경없이 사관학교에 들어가서 4년의 세월이 흐른 뒤 21살의 신임장교가 된 차베스의 머리에는 단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부패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5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25년 동안 군에서 조용히 준비했다. 4개의 결정적인 사건이 그를 도왔다. 1989년 신자유주의 충격요법에 반대해서 카라카스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민봉기* 1992년의 군사쿠데타와 실패로 인한 2년간의 옥살이, 1994년 피델 카스트로와의 만남.  이때부터 선거에서의 승리는 확실해 보였다. 차베스는 199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 "때가 된 사상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기 때문"이라고 빅토르 위고의 말을 인용해 출마 이유를 밝혔다.

(이 글은 이냐시오 라모네 기자와 차베스 대통령 생전에 대담을 엮은 책으로 <우고 차베스, 나의 첫번째 인생>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번역본 자료를 인용 발췌해서 참조 했습니다.


*국제 통화기금 (IMF)이 제시하고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이 실시한 구조조정 계획은 긴축정책, 복지국가 기초해체, 생필품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졌다. 1989년 2월27일 카라카스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거리와 상점등을 약탈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해서 일어난 세계 최초의 봉기로 '사회당'정부는 군대를 이용해서 시위대를 진압해 3천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카라카소'(Caracazo)라고도 불린다.


♦ 읽을만한 책

<<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가>>콜린 크라우치,2012,책읽는수요일.

<<야바위게임>>마이클 슈월비,2019,문예출판사.

<<갈색의 세계사>>비자이 프라샤드,2015,뿌리와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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