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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 이야기

몰락의 길로 들어선 일본 내셔널리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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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년의시간
댓글 0건 조회 9회 작성일 21-08-01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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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유신'이란 이름을 내건 채 메이지영광의 재래를 꿈꾸는 그들의 도박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이제는 식민지배를 통해 약탈할 '조선'도 없고, 마음대로 '진출'해서 급조해낼 만주국도 중원도 없다. 약탈과 식민지 초과이윤을 보장해줄 땅도 없는 21세기에 그들의 꿈은 출발부터 헛된 것이 아닌가. 기적같은 개헌 작업을 완료해 자위대를 보통 군대로 만들고, 전쟁 포기 조항을 삭제한다고 한들, 저들이 다시 을미사변을 일으키고 의병항전을 유린하면서 동학농민군을 휩쓸고 한반도를 다시 삼킨 뒤 제2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까지 감행해 중국과 러시아까지 격파하고 진군할 대륙이 기다리는 세월이 아니지 않은가.


자본과 시장의 영토라 한들 지금의 일본 자본주의가 100년 전 파죽지세를 꿈꿀 형편은 아닐텐데. 미국의 핵우산이 있다지만, 일본의 제2의 청일.러일전쟁 시도는 중국과 러시아의 핵 공격앞에 백일몽이 아닌가. 재래식 무기로도 일본은 그들을 이길 수 없다. 군사력 면만 본다면 일본은 해군력 세계 2위를 넘본다지만,한반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낙관할 수 없다.


일본의 근대 전쟁 승리는 서세동점의 압도적 우위의 서양과 절대적 열세의 동양이라는 비대칭 세력 구조 속에서, 서방 제국주의에 편승해서 가능했다. 그런 비대칭 구조는 이미 무너졌거나,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탈아입구식 일본의 근대 독점권은 오래전에 해체됐다. 세계2위의 경제대국 지위를 중국이 삽시에 일본 대신 차지했듯이, 오히려 힘은 일본에 불리한 쪽으로 급히 이동하고 있다.


야스다 고히치도 지적했지만,일본 신우익과 넷우익의 발흥은 이처럼 일본의 상대적 지위 약화, 한때 아시아를 호령하던 일본 경제력과 전략적 파워의 급속한 쇠퇴에 따른 불안과 초조, 상실감을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달리 말하면 아베와 그의 정치적 동반자 아소 다로, 하시모토 다루, 이시하라 신타로, 니시무라 신고등의 도발적 언동과 그들에 대한 지지율 상승은 자신감에 찬 공세적 확장 의욕의 발로라기보다는 불안감 가득한 수세적 방어 본능의 발로일 수있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건대, 일본에서 '황도파'의 재등장과 존왕양이,존황토간을 내세운 도막(막부타도)세력의 21세기 버전 5.15나 2.26시도가 없으리라고 누가 장담하리오.  그길로 가면 일본은 위험하다. 무엇보다 일본 자신의 몰락을 재촉할 것이다. 그런데 아베와 아소의 자민당은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민주당 정권의 실패로 기사회생한 뒤 더욱 오른쪽으로 선회하는 반동복고의 길을 택함으로써 위험한 길을 내달려갈 태세다.


아베 신조의 '신'자는 일본인이 숭상하는 메이지 유신 영웅중 한 사람인 다카스키 신사쿠의 '신'에서 따왔다. 신조의 아버지로 한때 자민당 실세였으나 암으로 사망한 아베 신타로의 '신'자도 신사쿠에서 딴 것이다. 다카스키 신사쿠는 메이지유신 주역들의 사상적 지주이던 요시다 쇼인의 문하다. 요시다는 말했다. "류큐(오키나와)를  손에 넣고 조선을 취하며, 만주를 누르고, 지나(중국)를 제압한 뒤, 인도에 임함으로써 진취의 세를 펴고, 그것을 굳게 지킴으로써 진구왕후(신라를 정벌했다는 설화의 주인공)의 못다 이룬 뜻을 완수하고 히데요시(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지를 달성하라."


요시다의 이 지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이들은 모두 '메이지유신의 고향'이라 일컫는 조슈번, 지금의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도조 히데키 내각 상공대신과 군수성 차관을 지내고, "만주국은 내 작품"이라고 말한 만주국 총무청 차장 출신이기도 한 A급 전범 기시노부스케도 야마구치 출신이다. 미국의 배려로 살아남아 전후 전후 일본 보수합동의 자민당 55년 체제를 만들고, 미.일 안보동맹 강화로 이에 보답한 '쇼와의 요괴'기시의 장녀가 아베 신타로와 결혼해 낳은 둘째아들이 아베 신조다. 그러니까 아베 신조는 기시의 외손자다.  


메이지유신의 또 다른 주역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모토,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해주는 대신 조선 지배권을 미국에서 보장받은 가쓰라 다로,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 등도 모두 조슈 출신이다. 이들과 메이지유신의 또 다른 고향 사쓰마(현 가고시마현 일원 영웅 사이고 다카모리, 지금 일본 1만엔 지폐를 장식하고 있는 있는 탈아입구의 후쿠자와 유키치 등이 조선정벌(정한론)을 부르짖은 것은 그 뿌리가 멀리 요시다 쇼인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조선침탈은 일본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침략을 위한 물적 토대 구축에 필수 불가결한 조처였다. 조선 식민지배가 제국 일본의 토대였다.


이웃에 대한 침략을 근대화의 시혜, 서구 제국주의 침탈로부터 아시아를 지키려던 민족해방운동이라 우긴다. 이들은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로 말미암은 이웃의 고통을 냉전이 무너진 1993년에야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 담화문을 통해 공식 인정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전쟁범죄 인정을 거부하며 전후의 고도성장속에 쌓아올린 기득권 속에 안주해온 일본 보수우파 주류 지배세력은 그들의 기존 가치관과 정신세계를 뒤흔들어놓은 담화 수준의 인식과 사과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것조차 그들에겐 충격이었다.....(계속)


♦ 읽을만한 책.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아스카와 쥬노스케,2015,역사비평사.

<<아베 신조,침묵의 가면>>노가미 다다오키,2016,해냄.

<<아베 삼대>>아오키 오사무,2017,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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