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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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그것은 오래전 선조들이 우리를 위해 쟁취해 주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유를 당연시 할 수 없으며, 우리 자손들에게 노력 없이 단지 그것을 물려주기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나라를 정의했던 진보적 자유는 시간과 더불어 상당한 노력과 희생 덕택에 확대되어왔다. 그런데 이 진보적 자유가 현재 공격을 받고 있다. 우리는 이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 외국의 적에게 빼앗기는 것도, 테러리스트에게 빼앗기는 것도 아니다. 바로 같은 한국 사람인 극우 보수주의자들에게 빼앗기고 있다. 극우 보수주의자들을, 자신의 의도를 진정으로 말하지 않는 위선자라고 규정하기란 쉬울 것이다.
때때로 그들은 위선자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거짓말을 하고 오웰식 언어¹를 사용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그들은 자신이 의도하는 것을 실제로 말한다. 극우 보수주의자들이 모두 악하거나 탐욕스럽거나 잔인하지도 비합리적이지도 또한 멍청하지도 않다. 또한 그들은 자기 고유의 도덕성, 우리가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도덕성을 가지고 활동한다. 그들은 국가에 충성스런 사람이 아니며, 애국적이지 않으며, 자유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란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우리보다 더 애국적인 사람으로 간주하며, '자유' 와 '해방' 을 진정 자신들의 구호로 사용한다.
만일 우리가 '자유' 나 '해방' 의 언어, 즉 우리에게 가장 심오한 가치가 있는 그 언어들을 통제한다면, 상황은 쉬울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낱말을 제멋대로 가져 다가 의미를 변화시켰다. 우리는 이 낱말들을 되찾아와서 그 의미를 복원해야 한다. 그런 다음 우리 정부를 되찾아오는 힘든 일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단결하고, 조직화하고, 지지를 호소하고, 동맹을 결성하고, 미디어를 잘 활용해야 한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대통령, 국회를 다수 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이 나라를 정의하는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문화전쟁이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나라는 분열될 것이고, 선거만으로 진정한 자유의 대의를 섬길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는 우리 자신과 타인이 어떻게 사고하고 말하는지를 의식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것을 상식으로 당연시하며 자라왔다. 이제 우리는 한 사람의 상식이 타인에게는 억압적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임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자유는 자유 바로 그 자체라고 생각하면서, 즉 이 낱말이 하나의 공통적인 개념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면서 자랐다. 이제 우리는 논쟁적인 개념을 인식해야 한다. 즉, '자유' 가 극우파에게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기회', '공정성', '책임', '해악', '동정' 과 같은 여타의 중요한 낱말 또한 극우파에게는 매우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1970년대와 1980년대 암울한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자유를 갈망하던 우리의 마음을 절절히 표현했던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 의 한 구절이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한마음으로 이 시를 노래했다. 이 구절이 다시 머릿속을 맴돈다. 피 흘려 싸워서 찾았던 '우리의 자유' 가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지난 6개월은 그렇게 힘들게 얻었던 자유가 얼마나 쉽게 다시 억압받을 수 있는지를 체험한 나날들이었다. 그 소중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진지하게 노력했는지 더 늦기 전에 반성해야 한다. '자유' 는 얻는 것도 힘들지만 지키기는 더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진보 진영의 지성으로 평가 받는 조지 레이코프의 저서 <<자유전쟁>>은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라는 레이코프의 단언은 기나긴 투쟁 끝에 얻은 '자유' 를 진지한 성찰 없이 스스로 넘겨 주었던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처럼 들린다. 레이코프는 '자유'가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며, 노예제 철폐와 여성 참정권 및 노동권의 신장, 시민적 권리의 확대, 기회의 확대, 환경 운동을 가능케 했던 것은 바로(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에 근거한) '자유' 에 대한 진보적인 해석이라고 단언한다. 미국의 보수 우익이 이 '자유' 의 의미를 자신의 구미에 맞도록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이 개념을 훔쳐가고 있기 때문에, 이 소중한 자유가 현재 위기에 처해 있다.
레이코프는 이 위기감을 "'자유'를 잃는 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자유' 개념을 잃는 것은 훨씬 더 두려운 일이다" 라는 짧은 어구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을 위대한 정의의 나라로 만들어준 '진보적인 자유' 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 한다. "이것은 개념 전쟁이다. 만일 자유 개념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자유는 빼앗기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개념을 바탕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개념은 추상적인 대상이 아니라 행동적 요소이다. 개념은 이상을 정의하며, 행동의 규범을 만들어내며, 옳고 그름의 특성을 규정한다." 이에 따라 개념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우리의 이해, 미래에 대한 우리의 전망, 그리고 심지어는 나라의 법률도 바꿔버린다. '자유' 라는 낱말을 소유한다는 것은 이 낱말에 동반되는 개념을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이 개념이 정의하는 문화를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시 대통령의 취임 연설에서 자유에 대한 보수적인 정의를 청중들에게 교묘하게 주입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예를 들어, "역사에는 자유와 자유의 창조자가 정해 놓은 분명한 방향이 있다" 라는 문장을 사용하여 부시는 자유를 하느님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그리고 민주주의를 종교 없이는 작동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한다. '자유' 가 침탈당하는 이러한 암울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레이코프는 진보주의자들이 프레임과 개념적 은유를 바탕으로 사고해야 하며 그러한 사고의 영향을 명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합리성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보수 언론에서는 지난 정부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라고 하면서 이젠 그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는 물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마저 위협받는다고 느끼고 있다. 생계의 벼랑에 몰린 사람들은 늘어가고,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기가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만일 이 상태로 간다면 서민들은 질병과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더욱 억압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이 '자유에 대한 보수적인 해석' 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으로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고통과 목숨을 걸고 생존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고통에 결코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다. 또한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절제력이 부족해서 자수성가 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누가 가난하라고 그랬냐? 게으르고 절제력이 부족해서 가난한 것이지' 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결코 자신의 정치적 사고를 스스로 바꾸지 않을 것이다. 서로의 삶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서로에게 책임을 다하고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우리의 자유'를 지키지도, 되찾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는 외침을 들어야 할 것이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그렇지 않으면 사는 것이 사는게 아닐 것임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목전에서 이태원 참사를 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몽둥이 아니면 변하지 않는다.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상대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냉혈한 좀비이기 때문이다.
1.오웰식 언어: '불경기' 대신 '경기 순환', 으로 '가격 인상' 대신 '가격 현실화' 로 둘러대는게 바로 '오웰식 언어' 라고도 불리는 이중화법이다. 불리한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가 아닌, 기후변화, 화력발전소나 핵발전소를 이야기 할 때는 건강한, 깨끗한, 안전한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참고도서
<<자유전쟁>>조지 레이코프.2009. 프레시안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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