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국민의 절규와 지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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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이었던 적은 역사상 딱 한번, 차르 군대의 붕괴를 틈탄 1917년부터 1920년까지 3년 동안 뿐이었다. 1991년 12월 25일 탄생한 지금의 우크라이나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로 구성되어 있다. 서부지역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폴란드에 속해 있었고 동부는 러시아 정교를 믿고 러시아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흑해 연안은 옛날부터 오스만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크림반도는 1954년 니키타 후르시초프 서기장이 일방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양도하기 전까지 한번도 우크라이나 땅인 적이 없었다. 우크라이나가 국가가 된 것도 채 31년도 안된 최근이다.
1990년대 국영산업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올리가르흐라 불리는 산업재벌이 등장했고 이들이 국가를 통치하고 있다(국가가 이들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부채가 염려스러울 정도로,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든 중립을 지키든 유럽과 세계에서 재편되는 힘의 역학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의 군사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이미 1998년 저서에서 러시아가 다시 강대국이 되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현 우크라이나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역사적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렌지 혁명'(2004) 때와 유럽이 처음으로 우크라이나를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시키려고 시도했을 때(2008) 이미 우크라이나 사태는 예견된 것이다. 유럽연합(EU)이 '동방 파트너십'(2009) 정책을 시작하면서 우크라이나와도 EU가입 협정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면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위기를 피할 수도 있었다. 물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경제를 고려해야 했겠지만,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톡' 까지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공간의 창설을 목표로 한 2003년 EU와 러시아가 맺은 전략적 파트너십과 유사한 협정이 체결되었더라면 EU는 NATO가 동쪽으로 확장되는 것을 원하는 국가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EU는 유럽과 러시아 중하나를 선택하라며 우크라이나를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친러 성향)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망설였다. 러시아의 제안은 유럽의 제안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2013년 11월 29일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서명하기로 한 EU가입 협정 조인을 뒤로 미뤘다. 유럽미사일 위기(1982~1987)¹이후 가장 심각한 지정학적 위기의 씨앗이 될 소지가 있는 문제를 결정하는 데 유럽이사회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은 EU의 지도부가 2014년 1월 브뤼셀에서 우크라이나가 주권국가라는 구실을 들어 EU 가입 협정의 내용을 러시아와 논의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EU가입 협정의 협상을 중단하자 마이단(독립)광장에서 '친유럽' 시위가 시작됐다. 그리고 2014년 2월22일,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축출되었다.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유럽에 기대를 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유럽집행위원회가 유럽의 기준과 규범을 비유럽연합 국가들에게 요구 할 수 있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유럽정치인들이 마이단 광장을 찾아 시위자들을 격려했다. 미국의 고위 정치가들²도 볼 수 있었다. 비정부기구와 언론은 마이단 광장의 시위를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극우조직(나치 부역자 집단)이 질서유지를 담당한 집회와 시위에 대해 지지를 표명한 것이 EU 및 NATO의 입장과 미국 및 미국기관의 입장 사이에 혼란을 초래하지는 않았을까? 야누코비치 정권이 야권과 2014년 2월 21일 정국 위기 타협안에 합의했으나, 하루만인 22일 우크라이나 의회는 대통령의 해임과 연내 조기 대선을 선언했다.
또한 의회는 국회의장과 내무부장관 대행을 야당 의원들에게 맡기는 한편, 대통령의 대표적 정적인 율리아 티모센코 전 총리를 석방했다. 러시아는 이 사태를 쿠데타로 보았다. 크림반도가 1954년 이전에는 러시아 땅이었지만 주민투표 방식으로 합병이 결정되었다고 해도 러시아가 과도하게 반응했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크림반도의 경우는 무엇보다도 흑해가 러시아의 전략적 요충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새 정부가 크림반도의 군항 세바스토플을 러시아에 2042년까지 임대한 약속을 깨지는 않을까 두려웠을 것이다. 5월 25일 우크라이나는 페트로 포로센코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빅토리 유센코(친서구)— 빅토르 야누코비치(친러)— 페트로 포로센코(친서방)— 볼로디미르 젤레스키(친서방)으로 이어지는 우크라이나의 지도자들이다.
정권의 교체 속에서도 정치부패, 서부와 동부의 지역갈등, 국제통화기금(IMF)금융위기, 빈부격차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절규는 기득권에 함몰된 정치권을 향한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이런 내부분열은 유럽과 러시아의 협력을 원하는 세력과 러시아에 대해 억제정책을 써야한다고 주장하는 세력, 즉 새로운 냉전을 원하는 세력(미국)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충돌하는 싸움에 우크라이나는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내부적 갈등이 국가 분열을 가속화하고 인근 강대국에 개입의 빌미를 준 경위는 강대국에 접경한 모든 국가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우크라이나, 터키, 이란 등과 함께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추축" 으로 꼽은 한국도 남북관계 악화와 내부분열 심화가 초래할 대외적인 후폭풍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신냉전주의자들은 러시아는 근본적으로 보편적인 가치에 반대하고 소비에트 연방을 다시 재건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늘의 러시아를 아는 사람들은 이 주장이 지나치고 왜곡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푸틴 대통령은 1990년대에 국민총생산이 반토막 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국가가 해체되는 것을 막았다. 이것이 그가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는 이유다. 푸틴은 제국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적인 것이고 러시아를 현대화 하는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도 다른 모든 나라들처럼 자국 안보에 신경을 쓴다. 그리고 러시아가 독일 나치에 대항해 가장 큰 희생을 치렀다는 것 역시 역사에서 지우려 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 새로 쓰기의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반공산주의보다 절대 더 오래 살아남아서는 안 될 것처럼 역사가 새로이 쓰여지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극화된 세계에서 유럽이 독립적인 주체로서 능력을 보여주느냐 아니면 포기하고 미국에 오랫동안 종속될 것이냐를 확인하는 것이다. 언론의 반러시아 감정은 1990~1991년 걸프전 때 보았던 여론몰이와 유사하다. 하지만 오늘의 러시아 현실에 무지하기 때문에 여론을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상적 흑백논리와 정보조작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제 '유럽의 유럽' 이 나타나야 할 때가 되었다. 이 유럽은 러시아를 '서방' 밖으로 밀어내지 않고 서로 받아들일 수 있고 합리적인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러시아와 함께 다시 정하는 것이 진정한 국익을 위하는 것이라고 미국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겠다.
러– 우크라이나 전쟁은 하루 아침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현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양국의 오랜 역사부터 지금까지의 사정을 고려하면 전쟁을 멈추는 노력을 해야 된다. 미국의 대리전은 자국과 본인에게도 실패할 운명이다. 현실은 미국의 국력이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할 만큼 강하지 못하다. 어느 시점에 미국의 지원이 중단되면 우크라이나(젤렌스키)는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된다. 브레진스키가 이야기했듯이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나라다.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과의 관계에서 우크라이나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국제정세를 잘 파악할 수 있어야 되고 우리의 국익차원에서 어떤 행로를 가야 하는게 좋을지 지도자의 현명한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개인적 생각은 지도자의 개인적 매력도 만약 유사시에 도움을 청할 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시라! 어떤 사람은 그냥 도와 주고 싶은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괜히 이유 없이 발로 차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 예쁨도 미움도 자기한테 나온다고 하지 않던가. 지식이 해박하면서도 겸손하고 타인을 생각하는 이타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면 매력이 철철 넘치며 호감을 보이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무지하고 무능하면서 남의 말은 듣지 않고 독불장군이라면 그리고 가짜인생, 조작인생, 거짓인생이라면 호감을 보일까? 대한민국이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가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1.유럽미사일 위기 : 1977년부터 소련과 중앙유럽에 SS20 중거리 핵미사일이 배치되자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신형 중거리 미사일(퍼싱2와 크루즈)을 서유럽에 배치할 계획을 세우고 협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협상이 결렬되고 1983년부터 유로 마사일이 배치되었다.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7년 말 중거리 핵무기 협정을 체결하고 배치된 미사일을 해체 시켰다.
2.빅토리아 뉴런드 유럽, 유라시아 담당 미 국무부 차관, 상원의원 존 매케인, 귀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부장관.
참고도서
<<거대한 체스판>>Z.브레진스키.2003.삼인.
<<가까운 러시아 다가온 러시아>> 정성희.2017.생각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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