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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 이야기

옛집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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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2-11-2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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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연에 잠깐 머물다 간다. 당연히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며, 죽은 뒤에도 자연으로 돌아간다. 사람에게 자연은 오랜 세월 동안 개발과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결코 자연을 해치는 일이 없었다. 큰 나무가 있거나 바위가 있거나 산이 있으면 그곳을 비켜 집을 지었다. 그들에게 자연은 언제나 신령한 존재였으므로 그것을 함부로 대하는 것 자체가 불경한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 한가. 건축기술의 발달로 빌딩과 아파트, 도심은 온통 시멘트와 철골, 화학독성물질로 이뤄진 인공 오염물질과 화학물질의 전시장이 되었다. 모두 이 땅을 더럽히고 냄새를 풍기고, 수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골치 아픈 쓰레기로 변하는 것들 뿐이다. 


반면 옛집은 수명이 다한다 한들 나무와 흙과 짚풀이 전부이니 썩으면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은 새로 지은 집일수록 더 '좋은 집' 으로 여기고 산다. 그것을 얻기 위해 꼬박꼬박 주택부금을 붓고, 다달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산다. 요즘 집의 대명사인 아파트라는 것이 평수만 다를 뿐 그 모양이나 짜임새는 거기서 거기다. 저마다 다르다고 홍보하는 아파트가 사실은 그 틀 속에서 같은 공간을 이리저리 비틀어 놓았을 뿐이다. 20,30층은 보통으로 짓는 아파트는 풍경과 자연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땅을 밟고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자연을 누리기 위해 정원을 갖춘 집은 도심에서 흔치가 않다. 도심에서 자연을 누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제력이 필요하다. 실제 도심의 정원도 자연을 들여 놓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연에 대한 가혹한 학대인지도 모른다.


자연을 만신창이로 만든 주범은 바로 사람의 이기심이다. 당장의 안락함과 편리함은 사람을 무감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소비하는 만큼 자원은 고갈되고, 생태계는 파괴된다. 이런 환경 파괴가 결국 우리 모두를 파괴하는 행위라는 것을 인지했으면 좋겠다. 이는 미국식 생활방식인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악순환 때문에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는 단계를 지나 멸망의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옛날보다 더 좋은 집에서 더 편리한 생활을 누린다고 해서 우리가 옛날보다 더 행복해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기계가 일을 대신 해주고 있는 데도 이 순간에도 바쁘게 다른 일에 매달리고 있다. 고속철과 비행기와 컴퓨터가 사람의 시간을 절약해 주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시간이 없다고 한다. 시간이 없는 인류는 점점 더 자연에서 멀어지고, 지구의 시간에서 멀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쁘게 지구를 갈아 엎고 그곳에 집을 짓고, 콘크리트로 바닥을 싸발라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드는 반환경적인 개발이 계속되고 있다.


"옛집의 자랑은 바로 삶의 공간을 자연에 들여 자연과 행복한 어울림을 이룬다는 것이다. 따로 인위적인 정원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문을 열고 나가면 앞으로 굽이진 강이 흐르고, 뒤로는 푸른 산자락이 펼쳐진다. 나무와 꽃들은 도처에서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운다. 그것들을 옮겨올 필요 없이 그것들 속으로 집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집의 공간 하나하나가 땅과 자연을 누리고 있다."(<<옛집기행>>이용한.16쪽) 요즘처럼 몇 미터 높이에 가시철망을 치고 그것도 모자라 고압선 장치를 두어 난공불락의 요새를 두어 외부와는 단절을 하고 산다. 그게 부의 상징인 것처럼 하고 산다. 옛집은 기껏해야 돌담이나 흙담이었고, 아예 담을 두지 않거나 얼기설기 싸리나 생나무로 엮은 울타리가 전부였다. 집의 모양과 꾸밈새는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이 아니다. 누대에 걸쳐 슬기와 솜씨를 더해 이어온 전통이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 주거방식을 해체하고 서양식 주거방식으로 교체하는 대대적인 운동을 우리나라에서 정책적으로 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이른바 '새마을운동''취락구조개선사업'(1977)으로 불리는 이 국가적인 사업은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라는 구호 아래 전국의 무수한 옛집들을 이 땅에서 무참히 폐기 처분해버렸다. 당시에 초가삼간은 가난의 상징일 뿐이었으며, 굴피집이나 너와집과 같은 다른 옛집들도 버려야 할 '낡은 것' 에 다름 아니었다. 하여 우리의 오래된 집은 처분 대상이었고 구시대의 낡은 상징이었다. 서양에서 건너온 '콘크리트집' 만이 신식이고 좋은 것이었다. 정부는 '잘살아 보세' 논리를 앞세워 별다른 저항없이 전통주거문화 해체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요즘 나라가 어수선하다. 청와대 이전문제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이전해서 간 곳이 용산의 국방부 자리인데 그 곳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서울 서민들의 공동묘지였던 곳이다. 이전의 이유를 밝히지 않아 모르겠지만 미신을 믿는다면 청와대는 한 사람의 원혼을 달래주면 되는데 용산은 수많은 서민들의 혼을 달래주어야 한다. 그러니 잡음이 끊일 날이 없는 것이다. 전에는 국방부의 무력으로 누르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귀신들이라도 꼼짝을 못하고 있던 것이다. 청와대는 현대의 궁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잘 알려진 곳들도 있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신비롭게 남아 있는 '오솔길' 과 '샛길' 도 있다고 한다. 그 길들을 걸으면 역사의 향기와 문화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게 된다. 청와대는 아직 살아 있는 현대의 궁궐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역사 속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고려시대다. 그 이후 역사 속에서 잊혀지나 했는데 조선의 건국 때 태조 이성계는 재위 3년째인  1394년에 새 수도 건설을 위한 임시 기구로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관리들에게 새 궁궐터를 찾게 했다. 오늘날의 청와대 터에서 좀더 남쪽으로 내려간 평지에 궁궐을 짓기로 한 것이다. 태조는 곧 그해 정도전에 궁궐 짓는 일을 시작하라고 명했다. 정도전은 곧 바로 태조 4년(1395)에 본격적으로 궁궐을 짓기 시작하여 9월에 완성했다. 이것이 바로 경복궁이다. 그 후 세종 8년인 1426년에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경복궁 후원이 조성됐다. 하지만 1592년에 임진왜란으로 경복궁과 후원은 완전히 폐허가 됐다. 그 상태로 270년간 방치됐다가 고종 2년인 1865년에 흥선대원군의 노력으로 다시 중건돼 화려하게 부활했다.


일제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을 완전히 눌러버리기 위해 경복궁보다 지대가 높은 경무대 자리 즉 오늘날의 청와대 자리에 총독관저를 세웠다. 또 풍수상 용맥龍脈에 해당하는 자리를 막아 보겠다는 속셈과 과거 조선의 관리를 뽑던 과거장을 차지해 버림으로써 우리나라의 정기를 완전히 끊어 버리겠다는 야욕도 있었다고 한다. 해방 후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집무실로 사용했다. 청와대靑瓦臺란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윤보선 대통령인데  그는 이승만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어서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준다는 생각에 이름을 청와대로 바꾸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궁궐의 뒤뜰이었던 곳이 현대에 와서 대통령 관저로 사용된 셈이다.


청와대는 이후 일제 잔재 청산 작업 후 새로 건축되면서 전통미를 살리기보다는 실용성을 강조해 지어졌다. 청와대에서 재료와 건축양식 뿐만 아니라 건물 이름까지 우리 전통에 따라 지은 것은 후원에 있는 상춘재 뿐이다. 본관, 춘추관, 영민관, 여민관은 모두 철근 콘크리트로 된 현대식 건물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거주하면서 정치와 행정을 맡아 처리하던 국가 최고 통치기관이었다. 청와대에는 대통령만 사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하여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진과 대통령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호실 직원 등 많은 사람이 기거하고 근무하며 국가 운영을 했다. 


청와대가 현대의 궁궐로서 어떻게 사용되고 숨 쉬고 있었는지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 들어선 건물은 옛날 궁궐 모습 그대로를 표현하지 않았지만 건축양식과 문양 등을 우리 것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또한 외국의 국가원수를 위한 공식 환영식 등 국가 행사에서 사용하는 의장기, 전통 의장대, 현대식 의장대 등의 모습에서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볼 수 있다. 그리고 청와대 신축 공사 중이던 1990년2월 20일에 신축 공사장 바로 뒤 바위에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 라는 표석이 발견 됐다. 하늘 아래 가장 복 있는 곳이라는 표석의 발견은 청와대 터의 가치를 다시 한번 만천하에 널리 알렸다. 이 표석은 암벽 전면이 풀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청와대는 우리 문화의 숨결과 향기가 가득한 곳이다. 정치적 시각을 걷어내고 청와대를 들여다보면, 우리의 전통이 현대적인 실용성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문화예술적 공간이다. 오랫동안 한국 현대 정치사의 희로애락을 몸소 겪었던 청와대가 이제는 국민 앞에 오롯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공간을 놔두고 왜 옮겼는지 의아할 뿐이다. 시중에 떠도는 말로는 역대 대통령들의 끝이 안 좋아 옮겼다는 소문이 돌던데 실제 이유가 그렇다면 실수한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한 사람의 원혼을 달래주며, 역대 대통령들을 반면교사로 삼으며 생활했다면 지금과 같은 소란은 없을 것이다. 개인의 집도 터가 세면 사는 주인이 맑은 영혼을 갖고 생활이 반듯하면 그 터의 기운을 누르고 잘 살수 있다. 


참고도서


<<옛집기행>>이용한.심병우.2005.웅진지식하우스.


<<사진과 사료로 보는 청와대의 모든 것>>백승렬.2022.아라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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