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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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아무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사실 어제 오늘 제기된 주장은 아니다. 기본소득의 주장은 ,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의 지도자인 토머스 페인의 <농업의 정의>(1796)에서 발견된다. 그는 국가 기금을 조성해 남녀를 불문하고 21살이 되는 국민에게 15파운드를 지급하며, 나아가 50살이 넘은 모든 국민에게는 매년 10파운드를 지급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의 사정으로는 아주 파격적이었다. 1797년 토머스 스펜스의 <아동의 권리>를 거쳐, 19세기에는 존 스튜어트 밀에게서 더욱 구체화된다. 마르크스의 '필요에 따른 분배'도 이를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 들어서 버트런트 러셀은 노동과 무관한 사회소득이 모두에게 지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틴 버겐과 제임스 미드는 기본소득을 적극 주장했고, 제임스 토빈과 밀턴프리드먼도 기본소득과 유사한 최소보장소득 내지 마이너스 소득세를 제안했다. 토빈은 처음에는 마이너스 소득세와 같은 최소보장소득을 주장했고, 신자유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은 이를 수용해 구체화했다. 기본소득은 오래된 미래지만, 앞으로는 그리 먼 미래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브라질에서 그리고 독일과 몽골에서 갑자기 기본소득이 사회적 의제로 부상한 것처럼, 한국도 이재명 의원이 적극 주장하고 있고,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면서 기본소득의 미래는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빠른 속도로 인류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와 진보뿐만 아니라, 케인주의자나 심지어 자유주의자 중에도 기본소득 내지 이와 유사한 제도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 그만큼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안에서도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충분한 기본소득이 실현되면 우리 삶은 지금과는 판이해 질 것이다. 양성의 경제적 평등이 앞당겨지고, 가난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더 이상 병원비나 생활비가 부족해 치료를 못 받는 사람도 없어지고,장애인은 적어지고 경제적 · 육체적 고통에서 획기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노인과 손자뿐 아니고 대학생은 먹고 살기 위해 공부하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공부할 것이다. 노숙자와 거지는 사라지고, 사람들의 자살률도 급감할 것이다.
기본소득 이후의 삶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다. 기본소득은 그만큼 우리의 미래 사회를 간결하게 보여준다. 그 간결성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매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새로운 변혁의 주체를 만들어 내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걱정하는 이유 중 대표적인 4가지를 들 수가 있다.첫째는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노동유인이 사라져 아무도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만 선별해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선별 복지 정책을 쓰고 있다. 선별복지는 사람들을 '복지의 함정'에 빠뜨리는 경향이 있다.
복지 함정이란 한번 복지 혜택으로 살게 되면, 계속 복지에 의존해 살아가려는 경향을 말한다. 복지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최저생계비 100만원을 보조받던 사람에게 100만원짜리 일자리가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람은 이 일을 안 할 것이다. 일을 하면 월급 100만원을 받는 대신 최저생계비 100만원을 못 받으니까 소득은 100만원 그대로다. 괜히 일하느라 힘만 들게 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보편복지에 속한다. 기본소득에는 이런 복지 함정이 없다. 4인 가족이 기본소득 100만원을 받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아빠에게 100만원짜리 일자리가 생기면 아빠는 당연히 그 일을 할 것이다. 일을 하면 힘들겠지만 소득이 200만원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부자에게 기본소득 지급할 필요가 없다. 부자를 이롭게 할 뿐이며, 사회적 낭비다. 부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모든 국민에게 인간답게 사는 헌법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본소득을 보장한다는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부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부자가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만드는 것이다. 기본소득 정책을 쓸 때는 부자는 세금을 더 많이 내게 된다. 부자에게 기본소득을 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숨은 의도는 부자를 이롭게 하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인구의 대다수를 이롭게 하는 정책이다. 소득 격차가 클수록, 그리고 누진 세율로 과세할수록 전체 국민 중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의 비율은 더 커진다.
셋째는기본소득보다 완전고용이 더 중요하다.지금까지 자본주의 역사에서 모든 정부가 고용 창출을 목표로 해왔지만 완전고용은 한 번도 달성된 적이 없었다.특히 1970년대 이후에는 완전고용이라는 목표를 포기하고 고용 창출이라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지금까지 완전고용 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IT혁명으로 산업혁명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고용 없는 성장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항구적 추세가 되었다. 그래서 산업현장에서는 노동이 불필요하니까 노동자를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으로 고용해 저임금을 주는 것이 가능해졌다.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보다 약 절반수준 아니면 약간 상회할 것이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갈수록 없어지고 대기업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것은 일류대학에 진학 하는 거보다 훨씬 힘들게 되었다.
청년은 '88만원 세대'로 전락해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못 낳고 있다. 30살에 결혼하면 빨리 결혼한다고 축하를 받게 되었다. 이제 유토피아 사회에서나 완전고용을 꿈꿀 수 있을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미드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쓴 마지막 저작들에서 현재의 조건에서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은 여러 경로로 다양한 길을 제시해준다. 기본소득은 노동시간을 단축을 가능하게 해준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노동시간 단축 없이 완전고용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비자본주의적 노동을 증가시켜 노동시장에 공급 압력을 줄여준다. 우리 사회에는 돈을 많이 버는 노동보다 보람 있는 노동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 등 예술가, 비인기 학문 전공자, 환경운동가, 고아원, 양로원 복지가, 사회복지 노동자, 발명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종사자 등 수많은 사람을 들 수 있다.
기본소득은 이런 사람들을 비자본주의적 노동에 종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동안은 돈 때문에 하고 싶은일을 못하고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에 시달리며 일을 했어야 했다.
넷째는 기본소득은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 경제는 기본소득에 대한 재정 부담을 질 여력이 충분하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세금을 적게 내는 나라에 속한다. 2008년 총조세부담율을 26.6%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가 되려면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내야한다. 세금을 더 내지 않으면서 복지국가가 될 수 있는 길은 없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 하니까 거부감부터 드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서민이나 중산층의 소득세나 부가가치세를 인상하지 않고도 1인당 연간 300만원 씩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
주로 부동산세, 증권양도소득세, 배당이자소득세, 탄소세 같은 환경세, 그리고 IT기술을 이용해 지하경제에서 세원을 포착해서 걷을 수 있다. 그러면 서민들이나 중산층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개 이런 정책을 편다고 할 때 왜 없는 사람이 반대를 하는지 참으로 웃기는 현상이다. 위에 열거한 세금에 해당되는 사람이 부유층 말고는 해당도 없는데 반대를 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웃음이 나온다. 기득권층의 꾀임에 빠지지 안했으면 한다. 자기들이 세금을 안내려고 세금폭탄이니 재앙을 초래한다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세금폭탄 맞아 죽는 사람 봤나? 또 재앙을 초래해서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 봤나? 서민들은 하루 먹고 살기 바쁜데 증권을 양도할 만한 주식을 보유하고 있나? 은행에 돈을 축적 해 놓고 이자소득을 내는 서민들이 있는가? 지대를 받을 정도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가?
우리나라 경제력에 비춰보면 기본소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제는 정치적 의지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찬성 내지 실험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기본소득은 생각을 바꾸기만 하면 당장에라도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이다. 우리나라처럼 복지수준이 낮고, 경쟁력을 중시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큰 나라에 적합한 복지정책이다. (<L diplomatique>2010.08.곽노환.강남훈 글 중 참조)
참고도서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다니엘 라벤토스. 이재명 옮김.2016.한솔수북.
<<조건 없이 기본소득>>바티스트 밀롱도.2016.바다출판사.
<<모두에게 기본소득을>>최광은.2015.박종철출판사.
<<21세기 기본소득>>필리프 판 파레이스외.2018.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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