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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 이야기

내게 잠잘 자유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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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
댓글 0건 조회 144회 작성일 23-03-25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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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중에는 연속 일주일 동안  깨어 있을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새가 있다고 한다. 바로 목덜미가 하얀 멧새다.이런 계절적인 특이 행동에 의해 밤에는 날고 낮에는 먹이를 찾을 수 있다. 미 국방부는 이 특이한 조류의 연구에 의해 상당한 액수의 돈을 쏟아 부었다. 이 새의 두뇌에서 수면을 취하지 않는 긴 기간 동안 이 새의 두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연구했다. 그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그 조류의 두뇌활동에 대한 지식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 수면에 대한 통제를 목적으로 삼는, 보다 거대한 프로젝트의 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단기 목적은 7일 동안 전투원이 쉬지 않고 작전을 수행하게 해주는 방법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장기 목적은 전투원이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경과 시간을 그 두배로 늘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육체의  '수면 욕구'를 축소하는 방법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전쟁 중에 이루어진 혁신들은 그 후에 더 넓은 사회 영역으로 전파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예는 우리 일상생활에 깊이 들어온 것이 많이 있다. 다시 말해 잠자지 않는 군인은 잠자지 않는 노동자나 소비자가 출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듣기만해도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자본을 탐하는 대형 제약산업회사들은 처음에는 단순히 삶을 영위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선택되지만 결국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필수품이 될 것이다. 수면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고 생산, 유통, 소비의 측면에서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을 야기한다. 이는 1일 24시간, 1주 7일 동안 활동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에 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인위적인 욕망의 수렁에서 벗어나 있는, 우리 삶의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는 수면 시간은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욕들 중의 하나다. 수면은 자본주의가 우리를 희생시켜 시간을 강탈해 가는 것을 가차 없이 방해한다.


기아, 갈증, 성적 욕망 그리고 최근에 목록에 오른 우정의 욕구 같은 인간 삶의 본질적 욕구들 대부분이 상품화 형태나 자본화 형태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수면이 대규모 수익성 작업에 점령당하거나 종속당할 수 없는 인간의 기본 욕구라는 사고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수면은 현재 세상에서 이상(異狀)과 위기의장소로 남아있다. 이 분야에서의 모든 과학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면을 착취하고 개조하기 위한 전략들은 계속해서 좌절되고 말았다. 우리가 수면에서 어떤 금전적 가치도 추출해낼 수 없다는 것이 놀랍고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현실인 것이다.


수면에 대한 공격은 20세기에 강화되었다. 한 세기 전에는 우리가 수면을 10시간 동안 취했다. 수면은 17세기 중반부터 사람들은 생산성과 합리성이라는 현대적 개념들과 수면이 양립될 수 없음을 포착하기 시작했다. 데카르트, 데이비드 흄, 존 로크뿐 만 아니라 다른 철학자들도 정신의 작용이나 지식의 탐구에서 수면이 차지하는 안정적 지위가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사람들은 수면보다는 인식· 의지 및 유용성, 객관성, 개인적 관심에 의한 행위동기 같은 개념들을 더 높이 평가했다. 로크는 수면을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중요한 임무들을 완수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인으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그에게 인간은 부지런하고 이성적인 창조물이었기 때문이다. 흄의 <인간 본성론>의  맨 첫 문단은 무질서한 수면· 흥분 · 광기를 지식에 대한 장애물의 실례로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이런 사상을 뒤집어버린 보기 드문 사상가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인간 존재의 '진정한 핵심'수면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고 까지 주장했다. 유럽의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극단적으로 나쁜 봉급을 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공장 사장들은 노동자들의 휴식 시간을 줄이는 것이 더 큰 수익을 얻는 방법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 간의 경험적으로 수면은 1일 24시간, 1주 7일간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주요 장애물인 마르크스가 '본성적 장벽'들 중 최후의 장애물이라고 말한 수면은 결코 제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면을 방해하고 노략질하는 것은 늘 가능하다. 이 거대한 수면파괴 계획에 필요한 방법들과 동기들은 이미 만들어졌다.


오늘날 공공 공간들은 거기에서 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도록 고안되었다. 여기에는 아주 잔혹하게 사람이 눕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고안된 공공장소의 벤치들과 지면에서 떨어진 다른 평면공간들의 디자인도 포함된다. 수면에 대한 공격은 다른 영역들에서 맹렬히 퍼지고 있는 사회보호망 해체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음용수에 대한 보편적 접근이 물병의 상업화로 이어지도록 계획된 사유화 및 오염에 의해 불가능해진 것처럼, 이와 유사하게 희귀품을 창출해 내는 일들이 전 세계적으로 현저하게 발생하고 있다. 우리가 수면에 가하는 모든 침해는 일반화된 불면 조건들을 창출해내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수면을 구매할 수 밖에 없게 된다.(진정한 수면이라고 할 수 없는 화학적으로 제공된 수면 상태를 얻기 위해 우리는 돈을 지불한다).


현대인들의 수면제 사용량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다. 21세기인 현재, 수면에 대한 걱정은 미래와 수면을 더 혼란스럽게 연관시키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사회와 자연 사이의 경계 어딘가에 위치한 수면은 순환적 동기들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보장해준다. 그런데 이런 순환적 동기들은 삶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자본주의와는 양립되지 않는 것들이다. 수면이 비정상적으로 취급되고 있는 현상이 우리 행성 위에서의 삶의 조건들 자체의 파괴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고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보존이나 보호 같은 개념을 자신의 시스템 안에 내포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수면의 무기력을 복원 시키는 것은 축척, 자본화, 낭비와 같은 자본주의의 모든 치명적 과정을 포기하게 한다는 의미다.  이런 모든 과정은 예전에 공동 자산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을 황폐화시켜 버렸다. 현재는 다른 모든 꿈들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하나의 꿈만 남아있다. 파멸을 가져오지 않고 서로 공유하는 세상, 억만장자들이 없는 세상, 모든 것이 사물화되는 그런 악몽들이 실현되는 재앙적 시나리오와는 다른 모습의 역사를 구현하는 세상에 대한 꿈이 그것이다. 


모든 장소에서, 꿈을 꾸는 상태를 비롯한 아주 다양한 상태에서, 자본주의가 없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데, 그 상상은 우리가 잠자면서 꾸는 꿈들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꿈을 자본주의와의 근본적 단절로, 세계화된 우리 현실의 견디기 어려운 무게에 대한 거부로 간주할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바로 수면과 동일시 될 것이다. 이 수면은, 우리의 가장 평범한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너무 뻔한 반복을 하는 대신에, 다 의미있는 갱신, 재개를 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L diplomatique>2014.6.조나단 크러쉬. 글 중 참조)


인간에게 수면은 가장 중요한 일중 하나이다. 고문중에서도 특히 잠을 안 재우는게 가장 가혹한 고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인간은 가장 견디기 힘든게 수면욕구, 식욕, 성욕을 억제 받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탐욕이 이제는 수면욕구까지 제어하는데 관여를 하여 돈을 탐하려 하니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다. 전쟁에서 잠을 안 자는 전투부대와 싸우고 있다면 그 공포는 상상하기도 싫다. 당연히 잠을 자고 있는 전투부대는 꿈에서도 두려움에 떨다가 몰살당할 것이다. 어쩌면 심리적으로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전투 방법이 아닌가 한다.


핵무기나 지구멸망은 막연하게 두려움이 있지만 이는 순간적이다. 그러니까 내가 죽는줄도 모르게 소멸되지만, 잠 안자는 살인병기와 마주하고 싸운다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제약 산업에 의해 공격적으로 추진된 '잠자지 않는' 약품들은 처음에는 단순히 삶을 영위하는 방법 중의 한 가지 선택품으로 제시되지만,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필수품이 될 것이다. 1일 24시간, 1주 7일 노동을 한다.!! 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살인이고 인간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유럽에서 1815년 이후 반혁명, 전복 , 희망의 박탈이 수십년 동안 이어지면서 예술가들과 시인들은, 수면이 필연적으로 역사 밖으로의 탈출이나 도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직관을 갖게 되었다. 꿈이 또 다른 형태의 역사라고 생각했다. 수면이 더 공정하고 더 동등한 미래의 탄생에 필요한 동요와 걱정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주 69시간이면 주 5일, 하루 14시간 일을 한다. 우리는 수면의 권리를 침해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일이다. 그런데도 조용하다. 특히 젊은이들!! 그래도 일자리라도 있는 것이 다행인가?   수면과 죽음의 관계.


읽을 만한 책


<<전쟁의 역설>>이언 모리스.2015.지식의 날개.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필리페 판 파레이스.2016.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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