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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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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
댓글 0건 조회 52회 작성일 23-10-03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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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감어수無鑑於水, 원전이 <<묵자>>이다. 이 금언은 반전 평화론의 교훈이다. '사람에게 비추라'는 것은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 진晉나라 지백智伯의 고사에 비추어 보라는 뜻이다. 이 사람들에게 비추어 보면 공격 전쟁(攻戰)이라는 것이 결국은 패망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부차와 지백처럼 공격 전쟁을 계속하다가 패망한 역사적 교훈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서주西周 시대의 72개 제후국이 전국시대가 되면 7개국만 남게 된다. 이를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고 한다. 결국은 진秦나라로 통일이 된다. 전국시대에는 모든 나라가 패망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었다. 묵자는 전쟁 방식의 부국강병이 결국은 패망으로 끝나는 흉물임을 역설한다. 전쟁 방식의 패권 추구를 천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도 14년 만에 패망한다. <<묵자>>에는 전쟁의 폐해가 자세하게 열거되어 있으니 참조하고 이 기회에 한 번 일독을 권한다.


전쟁비용을 평화적으로 사용한다면 얼마나 민생이 나아질 것인가를 역설하고 있고, 오늘날 역시 사활적인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 전란의 시대이다. 묵자의 반전론을 소환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전 평화론은 전국시대의 모든 사상을 압도하는 최고의 사상임에 틀림이 없다. 참담한 전란의 시대에는 반전 평화론만큼 다급하고 현실적인 사상이 달리 있을 것 같지 않다.  묵가墨家 학파는 당시에 가장 많은 지지자를 가진 학파였다고 한다. 천하의 현학顯學은 유묵儒墨이라고 했을 정도로 유가와 묵가는 대세였다. 유가와 묵가의 무리가 천하에 가득 찼다고 할 정도로 묵자가 그 당시는 가장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학파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전혀 소개가 안 되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에서도 진한秦漢 이후로 묵가는 자취를 감춘다. 중앙집권적인 절대군주제와 관료제가 확립되면서 평등사상의 사회경제적 기반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묵자>>는 중국에서도 청나라 말에 와서야 처음 정립된다. 1894년에  비로소 <<묵자간고>>라는 책이 나온다. 현재 전해지는 <<묵자>>는 양계초, 호적 등에 의해서 1910년대에 비로소 만들어졌다. 1919년 5.4운동이 일어나고 중국에 마르크스 사상이 소개되면서 신 청년운동이 <<묵자>>를 주목하게 되는데, 우리에게도 이런 좌파사상이 있었구나 하면서 주목했다가 바로 폐기되는 불운을 겪는다. 두 가지 이유였는데 하나는 天志사상 때문이다. 하느님의 존재를 수긍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비폭력 사상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전략과 배치된다는 이유였다. 이런 이유로 중국 공산당에서도 배척을 당한다.  2천 년 만에 잠시 복권되었다가 금방 폐기되는 대단히 불우한 운명이었다. 그러나 <<묵자>>는 다른 제자백가들과 대비되는 독자적 영역을 분명하게 지키고 있다. 제자백가들의 사상이 道家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중간계급과 귀족들의 사상임에 반하여 <<묵자>>는 기층 민중을 대변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묵자와 묵가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 '묵' 墨이라는 성씨이다. 원래 성은 묵이 아니라 적翟이라는 설도 있다. 앞에다 묵 자를 붙여서 묵적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묵墨은 이 학파의 집단적인 명칭인 셈이다. 묵은 '먹'이다. '먹'이 상징하는 것은 형벌이다. 죄인의 이마에 먹으로 자자刺字한다. 예전에 드라마 <추노>에서 얼굴에 자자한 노비들이 나오는데, 중요한 것은 자기들이 형벌을 받은 노예출신이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밝힌다는 것이다.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때야말로 진정한 위기라고 한다. 스스로 형벌 죄인임을 선언하면서 국가권력에 대한 반체제적인 성격을 공공연히 표명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층민들의 지지가 가장 컸던 학파라는 것이다. 묵의 또 다른 의미는 '검다'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工人과 노동을 상징한다는 주장이다. 중국에서는 검은 옷이 노동복이다. 그리고 묵은 목수의 연장을 뜻하기도 한다. 어쨌든 묵자학파는 하층민, 공인, 죄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그들의 지지를 받는 학파라고 할 수 있다. 


묵가는 집단적 규율이 엄격하고 실천적 성격이 강한 학파였다. 묵자학파의 책임자를 거자鉅子라 하고 거자는 생살여탈권을 행사할 정도로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묵자학파의 사상도 다르지 않다. 묵가 사상의 핵심은 <상현,尙賢>, <상동,尙同>, <겸애,兼愛>등이다. 우선 <상현>이라는 것은 신분에 관계없이 현자를 천자로 모신다는 사상이고, <상동>은 모든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겸애>라는 것은 똑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천지>는 중국 공산당에서 비판한 하느님의 뜻이다 라고 하지만 사실 묵자의 하느님 사상은 절대 신이 아니라 일종의 도구 신 개념이다. 하느님이 겸애다 그러니 겸애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진노를 받을 것이다. <천지>는 일종의 규제장치였다. <천명>이란 없다. 그것은 폭군이 만든 것이다. 탕왕도 그렇고 주나라 무왕도 그렇고 민심을 잃은 부패한 왕조를 무너뜨릴 때는 천명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나중에 자기가 또 천명 때문에 쫓겨난다. 천명이라는 것은 폭군들이 자기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만든 것일 뿐 결코 하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유,非儒>는 유가에 대한 비판이다. 유가는 본질적으로 왕이나 지배계층에 기생하며, 괜히 오르내림의 절차를 번잡하게 하고, 슬픔을 강요하는 등 불필요한 예禮를 만들어 내는 무리라고 비판한다. 묵자학파의 차별성은 검소함과 비타협적 실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공석불가난孔席不暇暖 묵돌부득검墨突不得黔. 공자의 방석은 따뜻할 새가 없고, 묵자의 집은 굴뚝에 검댕이 없다는 뜻이다. 공자는 벼슬자리를 얻기 위해서 주유천하 하느라 그가 앉은 방석이 따스할 새가 없고, 묵자의 굴뚝은 검댕이 앉을 새가 없다. 아궁이에 불때서 밥을 하지 못할 정도로 궁핍하다는 뜻이다. 그런 고단한 삶을 영위하면서도 사람들의 어려움을 목격하면 불 속이라도 뛰어들고 칼날 위에 올라서기를 거리끼지 않는다. 그 말은 믿을 수 있고, 그 행동은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 내고, 한번 승낙하면 끝까지 약속을 지키며,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헌신적이고 실천적인 집단이었다. 그래서 천하의 현학顯學이었고 묵자를 따르는 도속徒屬들이 천하에 가득했다. 묵가의 이러한 실천적 행동에 대해서는 장자와 맹자도 인정하고 있다. 


묵자학파는 이처럼 실천적이었을 뿐 아니라 사상의 전개도 매우 논리적이다. 세상의 혼란을 바로잡으려면 먼저 그 원인을 알아야 한다. 그 원인을 밝힌 다음에라야 능히 그것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가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그 질병의 원인을 먼저 알아야 하는 것과 같다. 백성들에게는 세 가지 우환이 있다고 진단한다. 첫째는 굶주린 자가 먹지 못하고, 추위에 떠는 자가 입지 못하며, 일하는 자가 쉬지 못한다 고 진단했다. 현실 인식 자체가 대단히 민중적이다. 이런 인식은 기층 민중의 삶 깊숙이 들어가 있는 생생한 현실 인식이다. 묵자가 진단한 당대 사회는 무도하고 불안한 사회였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도 서로 사랑하지 않으며, 강자는 약자를 억압하고, 다수는 소수자를 겁박하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귀족은 천한 사람에게 오만하고, 간사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속인다. 세상은 불화와 원한으로 가득차 있다. 이러한 현실의 궁극적 원인은 바로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묵자의 결론이다. 따라서 근본적 해결 방법은 세상 사람들이 서로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차별 없이 사랑할 때 평화로워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묵자의 '겸애兼愛' 사상이다. 겸애는 기본적으로 계급 철폐의 평등사상이다.


묵자는 사람 다 죽이고 텅 빈 성을 뺏어서 어떻게 다스린다는 것인가 하고 반문한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흉물이다. 나라는 근본을 잃고 백성은 농사 대신 창칼을 들고 전장에 나가야 한다. 밭 갈던 말이 전쟁터에서 새끼를 낳게되고, 전쟁이란 이처럼 천하를 환란에 몰아 넣는 흉물임에도 불구하고 왕공대인들이 그것을 즐긴다면 이는 마치 천하만민의 죽음을 즐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전쟁에 관한 한 묵자만큼 그 불가함과 흉포함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사람이 없다. 이후 춘추전국시대는 진나라에 의해 통일되고 국가는 중앙집권 군주제와 관료제로 개편된다. 기층 민중들을 대변하고 겸애와 교리, 평등과 평화를 주창하던 묵가는 역사 무대의 뒤편으로 사라진다. 묵자학파의 사회적 기반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후 2천 년 간 잊힌다. 그 후 잠시 세상에 알려지지만 하느님 사상과 비폭력 사상 때문에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배격된다. 


오늘날에도 전쟁은 지구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도 전쟁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학교 다닐때 보면 무식하고 인성이 더럽고 품행이 방정치 못한 놈들이 대화와 협상은 안하고 모든 것이 딸리니까 주먹부터 내민다. 결과는 빵에가거나 조금 더 커서는 동네 양아치가 되어 있거나 건달행세를 하며 약한 사람들을 괴롭힌다. 참 불쌍한 놈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싸움의 당사자이거나 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씻지 못할 흔적을 갖고 평생을 살아간다. 개인들도 이럴진데 한 국가가 전쟁에 휘말리면 그 피해는 힘없는 국민들만 죽어 나간다. 한미간에 남북간 전쟁이 났을때를 상정하여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하루만에 서울 시민들 백만명 이상 죽는다는 결과가 있다. 더하면 더했지 작지는 않을 것이다. 수백만 명의 인명이 살상되는 끔찍한 결과를 알면서도 전쟁의 공포를 심거나 전쟁에 휘말린다면 그건 악귀들이나 즐기는 것이지 금수들도 그러지는 않는다. 러시아에서 젊은 청년들이 징집되고 전사하는날까지 4개월 이라고 한다. 우린 땅이 좁아서 1개월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민족의 명절 추석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담소도 나누고 그동안 만나지 못해서 풀지 못한 회포도 풀고, 애기들 재롱도 보고 이런 평범한 일상이 우리의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는 이미 답이 나왔다. 답을 알고도 타이밍을 놓친다거나 등한히 하면 큰 불행이 온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신차리고 깨어있는 시민이 되자. 우리가 개,돼지라면 그들은 악귀임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가족과 아름다운 우리 땅을 지키자.


참고도서


<<묵자가 필요한 시간>>천웨이런.2018.흐름출판.


<<담론>>신영복.2015.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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