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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 이야기

생기론적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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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
댓글 0건 조회 111회 작성일 23-10-16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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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론(vitalism)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주창되었던 과학철학으로서 생명은 생물이 가지고 있는 생기(vital force)에서 비롯되며, 그것이 무생물과 근본적으로 다른점이라는 믿음이다. 생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어떤 기계론적인 해석도 불가능하지만, 이것이 생물과 형상과 성장을 조절하며, 생명활동을 관장한다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 생명현상의 화학 및 물리적 본질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생물학에서의 생기론은 폐기된 이론이 되었다. 생기론은 전통의학(또는 대체의학)의 근간이 되는 철학이며, 질병의 모종의 생기(또는 기)의 불균형에 의해 초래되므로 이 불균형을 해소하는 치료방법을 모색해 왔다.(네이버 지식백과)


생기론적 정치라는 개념은 처음에는 있을 법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보면 현대의 가장 효과적인 정치 운동 가운데 일부가 생기론적 원천에서 그 에너지를 끌어왔음을 이내 깨달을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가 이끌어온 수십 년간의 투쟁이 그에 딱 들어맞는 예라고도 볼 수 있다. 간디는 정치적 무대가 인도였지만 그의 사상과 정치적 전략에 자양분을 제공한 것은 마치 지하의 강처럼 내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던 강력하고 끊임없이 이어져온 역류였다. 지구를 침묵시키고 정복한 프로젝트가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전통 속에서 생기론적이고 반기계적인 정치 형세를 가장 또렷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게 아니다. 남미에서는 유럽인의 정복 뒤에 수많은 봉기가 이어졌는데, 그 중 상당수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대한 믿음을 지닌 샤먼들이었다.


남미와 중미에서 일어난 이와 비슷한 봉기(운동)들은 에스파냐의 통치에 맞서 "전통적인 역사기록학이 늘상 허용해온"것보다 훨씬 더 격렬한 저항을 시작했다. 그와 비슷하게 북미에서도 샤먼이 이끄는 봉기가 수없이 많았는데, 그중 최고봉은 파이우트족의 예언자 워보가 영감을 불어넣은 유령의 춤 대중 운동(아메리카 인디언들에 의한 종교의식)이었다. 북·남미에서 노예제에 대한 저항은 비단 통상적 의미에서의 정치적 저항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형이상학적 저항이기도 했다. 과거의 형이상학을 창의적으로 재창조함으로써, 백인 인슬레이버(노예로 만드는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근원적 개념화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면에서 말이다. "흑인의 급진적 전통"의 원천은 아프리카에서 과거에 개발되고 문화로 면면히 이어져온 철학이다. 그것으로부터 혁명 의식이 싹텄으며 투쟁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졌다.  종종 공개적인 반란이 불가능할 때면 "사람들은 오비어(아프리카, 서인도 등지의 흑인들이 행하는 주술), 부두교, 이슬람교, 그리고 흑인 기독교····· 등을 통해 스스로와 자녀들을 신념, 신화, 그리고(언젠가 그들이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도록 허락해줄) 메시아적 비전으로 단련시키면서 훗날을 도모했다."


유럽의 인슬레이버들은 흑인 호전성의 이러한 측면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흑인의 저항을 그저 '사악한 미치광이의 영향을 받아' 야만으로 회귀하려는 작태로 여겼다. 하지만 이 같은 저항의 표현 양식을 보고 당황한 것은 비단 식민지 지배자들만이 아니었다. 서구의 급진주의자, 그리고 스스로가 서구 급진주의 전통에 속해 있다고 여긴 일부 흑인 지식인들도 당황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서구 급진주의자들의 기대가 틀렸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자본주의적 질서와 제국주의적 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들은 '선진' 국가가 아니라(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역사의 변방으로 치부되는 지역의 농민과 농업노동자들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들의 열정이 '마르크스 혁명 이론에서 가정하는 프롤레타리아 의식'의 발로였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보기보다는 "전설과 기발함과 예술의 합작품"이었다. 그보다 더 끈질기게 생기론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저항운동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우리의 모든 친척들(즉 강, 산,동물, 그리고 그 땅의 정령을 포함하는 비인간 친척 스펙트럼 전반)을 보호하기 위해 가족적 본능을 전면에 내세우는 윤리에 오랫동안 기초해온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기본적으로 영적이거나 종교적이지만 놀라우리만치 효과적이다. "우리는 비록 자원이 척박함에도 지역 차원에서 수많은 치열한 승리를 거두고 있다. 우리는 대규모 폐기물 매립지, 그리고 다국적 채굴, 목재, 석유기업들을 제압해왔다. 그리고 원주민 국가들 전역에서 사람들은 미래 세대를 위해 어머니 지구를 보호하는 투쟁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우리의 모든 친척들>>본문 중. 위노나 라듀크.) 전 지구 차원에서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비결은 다름 아니라 '우리의 모든 친척들'을 보호한다는 개념이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는 데 있다. 이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전 세계적으로 토착민들이 최근에 바로 그 생기론에 기반해 산과 강과 숲의 신성함을 강조하고, 그것들이 인간과 맺고 있는 친족관계를 부각함으로써 수많은 의미있는 법적 승리를 일궈낸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승리의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샤먼들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것은 매우 희망적인 전진이다. 공식적 근대성의 가장 강력한 보루로 손꼽히는 법정조차 생기론이라는 지하 강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강은 수 세기 동안 지하로 밀려나 있었지만, 이제 다시 한번 힘차게 전 세계의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2003~) 역시 플레가드를 손에 들고 스웨덴 입법부 앞에 앉아 있는 식의 점령운동을 통해 세간의 이목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녀가 영감을 준 운동이 널리 퍼져나가고 성장하면서, 그 운동들 역시 낭독· 공연· 댄스 따위를 개최하기 위해 공공장소를 점거하는 식으로 점령이라는 표현 양식을 채택했다. 툰베리 자신에 관해 말하자면, 그녀를 높이 끌어올린 용승(upwelling) 이 근대성에 의해 억압된 타자로서 대대로 지하 강에 머물러온 생기론의 또 다른 분출을 의미한다는 데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학에 귀기울이라(Listen to the Science: 2019년 유엔 기후정상회의가 열리는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기후 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인 툰베리가 기후변화를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답한말)" 는 툰베리의 만트라(mantra, 眞言,석가의 깨달음)일 수도 있지만, 분명 그녀가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의 추종자를 거느리게 해준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잔다르크 같은 전형적인 구세주를 떠오르게 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인류 문명은 이미 붕괴 궤도에 깊숙이 접어들었다는 어느 과학자의 말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명을 끝장 낼 위험은 대단히 크다. 제러드 다이아몬드 같은 석학도 인류가 이 상태로 간다면 50년내로 지구는 위기에 처할것이라고 경고했다. 인간종은 어떻게든 살아 남겠지만, 지난 2000년동안 인류가 쌓아온 거의 모든게 파괴될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이제 자원 착취적 자본주의가 命을 다했다는 것, 그 존재의 근거를 이루는 전망(미래)이 불확실해지면서 종말이 예고되어 있다는 것은 더없이 분명하다.미래가 뿌리째 흔들리면 경제 외 모든 것이 쓸모없어진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오직 여러 경제 주체에게 그들 앞에 무한히 긴 미래가 펼쳐져 있다고 설득할 수 있어야만 멸망을 피할 수 있다. 만약 미래가 중단될 예정이라면 그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부터 역逆의 도미노 현상으로 모든 경제 활동이 무너질 것이다. 이 사실을 세계 자본주의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앉은 억만장자들보다 더 잘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그들은 화성으로 도피하기 위해 서두르고, 그보다 덜 부유한 사람은 벙커나 지하 안가를 사들이느라 분주하다. 돈이 있으니까 사는 것이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지만 우스운 일이다. 아직 기회가 있을때 지구를 정화시키려 노력하는 것, 이것말고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근대성에 대한 기계론적 형이상학이 결코 완전한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한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서, 생기론적 신념은 늘 생계 지향적인 풀뿌리 환경 운동에 스며들어 있었다. 또한 그것은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가장 희망적인 조짐은 지난 30년 동안 앞뒤 돌아보지 않고 소비지상주의에 정신없이 빠져들던 많은 중산층 아시아인이('신성한 숲, 땅, 강과 바다라는 범아시아적사고'로부터 힘을 얻고 있는)지구 지향적 환경 운동의 호소에 서서히 귀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엄청나게 중요한 것은 기독교 성인 가운데 가장 샤먼적인(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이름을 딴 교황(프란치스코 교황)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카톨릭 교회가 지구와 관련해 교리를 대폭 수정했다는 사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직접 연설하고 있으며, 지구 위기를 세상에 일깨우기 위해 이미 지상에 있는 그 어떤 인물보다 많은 일을 했다.


이질적인 여러 단체가 지구 중심의 대중 운동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여러 나쁜 감정과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광범위한 정치적· 경제적· 생태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대유행'을 시작하는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는 바로 공감능력이다. 공감능력은 인간이 수많은 다른 종류의 동물과 공유하고 있는 특성이자, 결국에 가서는 우리에게 구원으로 가는 길을 밝혀줄 수도 있는 요소다. 누가 앞장 서는 결정적인 사람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영적· 생태적· 정치적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낙관적이고 지속적으로 제 몫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기론적 대중운동은 억만장자나 새로운 신기술이 아니라 증명된 인간 정신의 자원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인의 마음과 정신을 변화시킬 만큼 실제로 충분히 마술적인 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속절없이 무너져가는 지구 환경위기에 생기론적 대중운동이 미약하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인간은 공감능력을 갖고 있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종이기 때문에 지구의 위기를 슬기롭게 잘 넘으리라 믿고 있는데, 지구 곳곳에서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것을 보면서, 특히 이스라엘-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은 2000년 간의 악연을 끊어내지 못하고, 정치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악인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며 지구 기후 환경을 위기로 내몰고 붕괴를 앞당기고 있으니 후세들의 앞날이 걱정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과연 그 누가 지구의 위기를 구할 메시아인가? 내 마음의 간절함이 메시아가 될 것이다.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믿음을 갖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그런 사람이 간디가 되고 툰베리가 될 것이다.


참고도서


<<육두구의 저주>>아미타부 고시.2022.에코.


<<존재하는 신>>앤터니 블루.2011.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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