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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라 쓰고 전쟁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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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
댓글 0건 조회 202회 작성일 23-10-21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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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말해 평화는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핵심적인 질문은 이렇다. 누구를 위해 좋은 것일까? 팍스 로마나 Pax Romana는 로마인들에게는 축복임에 틀림없었겠지만 로마 제국의 속국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까? 모든 사람은 자기 입맛에 맞는 평화(이익)를 원한다. 평화로운 관계가 한쪽 당사자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또 전쟁과 혁명이 평화의 조건을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평화'라는 단어는 전 세계 정치인들의 자장가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전쟁은 평화이다'라는 수사법은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들이 사는 촌락들을 몰살시키는 작전을 '평정(Pacifcation)'이라고 부르고, 북아일랜드 주둔 영국군을 '평화 유지군'이라 부르며, 엄청난 살상력을 가진 미사일을 '피스키퍼 Peacekeeper' '평화의 수호자'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MX 미사일에 이처럼 피스키퍼라는 멋진 새 이름을 붙이자 퇴역한 미 해군 장성 유진 캐럴은 그것은 단두대를 두통 처방제라고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꼬았다.


팔레스타인 분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세계평화와 안전에 대한 가장 위협적인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반세기가 넘도록 세인의 주목을 끌어온 중동분쟁의 핵심은 팔레스타인 문제이다. 아랍지역이 서구 열강의 식민통치에 의해 산산이 조각나고, 그러한 제국주의적 지배에 대한 아랍인들의 민족적 저항이 세차게 일어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지역적 개념으로서 팔레스타인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문제에는 중동에 대한 제국주의적 지배와 아랍민족주의 형성, 유럽에서의 유대인 문제와 시오니즘 운동,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구조와 그 뒤를 이은 공존체제 등 이 시대가 안고 있는 여러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바로 이 때문에 오늘의 팔레스타인 문제는 단순히 아랍과 이스라엘간의 분쟁문제가 아니라, 아랍과 서방세계 및 전반적 중동문제와도 운명적으로 직결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역사적이며 거시적 안목에서 다루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충돌의 기원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스라엘 국가는 시온주의 깡패들이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인종 청소를 벌인결과 탄생했다. 그 뒤 70년 동안 이스라엘 국가는 일상적으로 팔레스타인들을 탄압했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모국'을 건설하려는 운동인 시온주의는 19세기 말에 유럽에서 성장하는 반유대주의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했다.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이 "땅이 없는 사람(유대인)을 위한 임자 없는 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1897년 팔레스타인을 방문했던 두 명의 랍비들은 "신부(팔레스타인 땅)는 아릅답지만 아쉽게도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고 말했다. 1차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팔레스타인에는 겨우 5만6000명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반면에 아랍인들의 수는 100만 명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처음부터 주요 열강들의 도움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뺏으려 했다.


1948년 3월 시온주의 민병대들은 테러를 저지르며 팔레스타인들로부터 땅을 뺏었다. 그들은 수백명의 아랍 주민들을 살해했고, 약 75만 명을 고향에서 내쫓는 인종 청소를 자행했다. 팔레스타인들은 가자, 서안 지구, 다른 나라로 도피했고 빈곤한 삶을 살았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역사적 팔레스타인 영토의 80%를 차지하게 됐다. 오늘날 이스라엘 법률을 보면 모든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이주할 수 있지만 팔레스타인들이 원래 자기 고향으로 돌아올 권리는 부정하고 있다. 날강도가 따로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역사적 팔레스타인 영토의 나머지 지역도 점령했다. 그리고 가자와 서안지구를 약탈하고 모든 종류의 팔레스타인 저항세력과 조직을 공격하곤 했다. 이스라엘은 탄생 순간부터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 왔다. 이스라엘은 군사화된 국가이며 핵무기를 포함해 서방에서 최신 무기를 공급받는다. 이스라엘은 두 가지 이유에서 군사력을 키웠다. 하나는 팔레스타인들을 억누르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중동 지역에서 서방의 이익을 보호하는 "경비견" 구실을 하기 위해서다.그래서 서방 제국주의의 중동 지배에 도전하는 모든 종류의 저항운동을 굴복시켰다. 이스라엘 국가의 식민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 성격 때문에 더 많은 충돌, 더 많은 폭격, 더 많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전폭 지지하는 것이 미국 내 유대인들의 로비 때문이라는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는 유대인 음모조직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좌지우지한다는 음모론과 연관 있다. 열렬한 시온주의자들이 역대 미국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자치하곤 했고, 미국의 대 이스라엘 원조 규모가 언뜻 상식적으로이해가 안 될 만큼 막대한 것은 사실이다. 미국 지배계급이 친이스라엘 세력을 용인·후원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 이후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은 시온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유대인들과 손잡고 중동 한복판에 이스라엘을 심어 넣었다. 이런 제국주의의 지원으로 키운 힘을 휘두르며 불안정성이 큰 중동에서 오늘날 미국 제국주의 사냥개 노릇을 한다. 가끔은 미국에 저항하는 척 하지만 말이다. 


연간 수조 원에 달하는 미국의 원조금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봐야 한다. 미국의 중동 지역에 매장된 석유를 통제하면서 누리는 이익(단지 금전적 이익뿐 아니라 지정학적 이익까지 포함)을 위한 선택이지 로비로 강요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미국을 움직인다고 보는 사람들은 상황을 완전히 거꾸로 보고 있는 것이다. 소수 종교·인종 집단의 음모로만 현 상황을 분석하는 것은 체제가 낳은 범죄들의 원인을 엉뚱한데로 돌리게 만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아랍인과 유대인이 과거에도 미래에도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둘 사이에는 원한 관계가 뿌리 깊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 갈등의 뿌리는 먼 과거가 아니라 당대의 역사에 있다. 그것은 시온주의 운동이 팔레스타인 땅을 뺏으면서 시작됐다. 그 전에는 모든 아랍 수도에서 유대인들이 무슬림이나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살았다. 예루살렘, 카이로, 다마스커스, 베이루트,바그다드 등 다른 아랍 도시들에서 유대인들은 아랍 도시 문화의 중요한 일부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상황은 변했다. 전 세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중동에서 사람들 사이의 분열, 갈등, 증오는 서방 제국주의의 유산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두 국가 방안'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역사적 팔레스타인 영토를 두 개의 국가(하나는 이스라엘 국가, 다른 하나는 팔레스타인 국가)로 나누는 방안이다. 겉보기에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떨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공정하고 영구적으로 해결하려면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 '두 국가 방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영토와 사람을 조화시킬 방법을 알지 못한다. 반면에 역사적 팔레스타인 영토 전체를 포함하는 통일된 다인종 국가를 건설하려는 '하나의 국가 방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실 '하나의 국가 방안'의 가장 큰 장벽은 현실적 어려움이 아니라 시온주의 자체의 성격이다. 시온주의는 유대인만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다. '하나의 국가 방안'은 근본적으로 시온주의의 인종차별적 이데롤로기에 도전하는 것이다.


1993년 발표된 오슬로 협정은 팔레스타인들에게 서안의 17퍼센트와 가자의 60퍼센트에서 자치권을 부여하고 이것을 완전한 팔레스타인 국가로 전환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독점하기를 원했고, 가능한 많은 땅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기를 바랐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장인 야세르 아라파트가 새로운 팔레스타인 정부의 지도자가 되도록 허용했다. 그 대가로 아라파트는 이스라엘에 많은 것을 양보했다. 이 일로 아라파트는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들을 통제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수 많은 도로, 천연자원, 영토를 통제했다. 또 평화협정 체결 후 2000년까지 점령지에 진출한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수는 두배나 늘었다. 오슬로의 '평화 프로세스'는 팔레스타인들의 삶을 조금도 나아지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선적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분노로 2000년 9월 2차 인티파다가 폭발했다. 2006년 펄레스타인 총선에서 당선한 하마스를 표적으로 삼아 팔레스타인 저항을 파괴하려 시도해 왔다. 하마스는 테러리스트 조직인가? 


미국은 언제나 "지금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하마스 때문" 이라고 했다. 미국은 하마스에 '이슬람주의 테러리스트' 딱지를 붙이고 싶어한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엄혹한 군사 통치 속에서 등장했다. 하마스는 미국이 지원한 '평화 프로세스'에 반대했고, 1993년 오슬로 협정이 팔레스타인 민중의 삶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경고했다. 당시 파타(야세르 아라파트가 주도)는 가장 유력한 팔레스타인 저항단체였다. 그러나 파타의 지도자들은 평화 프로세스의 대가로 저항을 포기했다. 하마스는 파타가 곧 덫에 걸릴 것이라 경고했다. 곧 평화 프로세스는 팔레스타인 다수에게 사기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스라엘은 계속 팔레스타인들의 삶을 유린했고, 요르단강 서안에 유대인 정착촌을 늘려갔다. 하마스의 인기가 팔레스타인들에게서 올라갔고, 하마스는 2000년에 폭발한 제2차 인티파다의 중심에 섰다. 2006년 1월 총선에서 하마스는 제1당이 됐다. 그러나 서방(미국)은 팔레스타인 총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마스 지도자들과 의원들은 연행되거나 암살당했다. 하마스 지지자들은 감옥에 가두었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은 이스라엘의 가자 봉쇄를 지원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분쇄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하마스를 뽑은 팔레스타인 대중을 벌하기 위해 여전히 군사력을 사용하고 있지만 하마스는 여전히 팔레스타인 합법 정부이며 저항의 전통을 잇고 있다. 중동의 모든 문제는 결국 제국주의의 문제다.제국주의가 과거 이스라엘을 건국했고, 오늘날 여전히 이스라엘을 돕고 있다. 세계 제국주의 열강들은 여전히 중동을 "세계 역사상 최고의 선물"(1945년 미국 정부의 표현)로 여기고 있다. 제국주의는 이스라엘을 필요로 한다. 아랍 친미 독재 정권들은 대중 항쟁으로 전복될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아랍인들은 친서방 지배자들이 중동의 석유 자원을 탕진하는 것에 분노하고 있으며 모든 아랍 수도에서 비슷한 구호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토지, 일자리 ,빈곤, 배고픔 때문에 분노하고 있다. 


오늘날 아랍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항운동들은 이 분노로부터 시작됐고, 노동자 파업들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분노와 연결돼 있다. 이 분노가 더 많은 파업과 시위를 고무하고 있다. 그래서 아랍 정권들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나 레바논의 헤즈볼라 같은 저항조직들을 두려워 한다. 모든 저항은 이스라엘과 서방에 대한 도전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도 이스라엘의 네타냐후(극우주의자) 정부가 강경책으로 일관되게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에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가자 지구는 혹독한 감옥이다. 거기서는 어느 인간이라도 저항하고 발악을 할 것이다. 석유로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벌어지고 있는 추악한 전쟁이다. 가자지구란 감옥에서 그냥 굶어죽느니 싸우다 죽는게 낫다고 생각하며 저항하고 있으니 쉽지 많은 않은 전쟁이 될 것이다. 생즉사 사즉생이 팔레스타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친일 제국주의가 가장 두려워한 것이 조선의 무장세력들이다. 홍범도, 김좌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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